태국인들은 본래 색깔에 민감하다. 심지어 요일마다 모두 고유색이 정해져 있다. 월요일은 노란색, 화요일은 분홍색, 수요일은 녹색, 목요일은 오렌지색, 금요일은 파란색, 토요일은 보라색, 일요일은 붉은색이다....어떤 요일에도 장례식이 아니면 검은색은 기피색이다. 해외의 유명 가이드북들은 "토요일에 보라색 옷을 입은 태국 사람을 만나면 패션 감각을 칭찬하라. 그러면 당신은 태국 문화에 대한 이해가 깊은 훌륭한 이방인으로 존경받을 것이다"라고 권장하고 있다.
if i had known this information, i would've totally followed the colour code when i was in Thailand.
i'll keep this in mind the next time.
학교를 그만 두고 자신의 삶을 개척하기 위해서는 학교 안에서 있을 때보다 자기 자신에 철저해야하고, 더욱더 부지런하고 노력해야한다. 목표가 뚜렷해야할 것이며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그걸 이루기 위해서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하는지 명확히 알아야하겠지. 그리고 정말 중요한건 자기가 선택한 것에 대한 책임을 질 줄 아는 것. 그런 각오와 책임감 없이 막연한 일탈을 꿈꾸며 불평 불만을 늘어놓는 사람은 꼴도 보기 싫다. and for whatever reason a person decides to stay in school, he/she should make the best of it. use it to your advantage. just suck it up and stop complaining, nobody forced you to be in school.모든 선택의 책임은 저에게 있습니다. 저는 학교를 그만두겠다고 결심하고는 두려움에 몸이 떨리기도 하지만 미지의 자유에 대하여 벅찬 기대를 갖기도 합니다. 물론 힘들겠지만 스스로 만든 시간을 나누어 쓰면서 창조적인 자신을 형성해나갈 것입니다.
저는 결국 제도와 학교가 공모한 틀에서 빠져나갈 것이며, 세상에 나가서도 옆으로 비켜서서 저의 방식으로 삶을 표현해나갈 것입니다. 90
그 제도를 역이용할 줄 알아야한다고 생각하는 1人.선생님은 네 글이 훌륭하다고 그랬어. 학교에 대한 네 의견에도 동의한대. 그러나 이 편지에 나온 주장은 너희가 이담에 어른이 되어 능력이 생긴 뒤에 학교를 세우거나 교육제도를 바꿔야 가능한 일이랬어. 이탈한 뒤에 개인이 감당하기에는 무척 힘든 노릇이래. 91
우히힉. 유일하게 빵 터져주신 부분.정수는 오페라곡을 음악으로 치지 않았는데 남녀 모두 멱따는 소리라는 것이 그의 결론이었다. 97
멋지구리ㅠ_ㅠ온종일 해변에서
게와 놀다
그리고 간간이 울다오래된 연못에
개구리가 뛰어든다
물소리그러나
감자밭을 적시기엔
아직 적다우리들이 안다고 하는 것들이며 감수성이라고 하는 것들이 얼마나 미흡한지 감자 잎사귀를 적실 정도도 못 되지 않은가. 101
무엇을했고 어디에 있었는지 보다는 누구와 함께였느냐가 항상 더 마음에 남는다.나는 나중에 베트남에 가서 산과 바다의 아름다운 경치가 얼마나 밋밋하고 의미가 없는지 알게 되었다. 어디에서나 기억은 거기 있는 사람과 함께 남는다. 그녀는 배낭을 메고 다시 안개 속으로 사라져버렸다. 175
never ever.그들은 사창가를 가거나 어두운 대폿집을 드나들며 퇴폐의 흉내도 냈지만 어느 길로 가는 것이 지도자가 되는 길인가도 잘 알았다. 절대로 자기 자신을 정말 방기하지는 않았다. 인호나 나처럼 온몸을 던지는 일은 곁에서 지켜보기에는 신나는 모험이었지만 그들 자신은 끝내는 신중한 충고를 하며 한 걸음 비켜섰다.
하지만 그들이 가진 매력 가운데 으뜸인 것은 역시 자기 존재와 생각을 서투르게 드러내지 않는 점이었다. 또한 밖으로 드러낼 때도 일부러 그것을 보편적인 사물에의 비유나 실제적인 것으로 바꾸어 표현했다. 185
self-discipline is the key.
자기 자신에게 엄격할 줄 알아야한다. 역으로 관대할 줄도 알아야겠지.
포인트는 바.란.스.
이힝-그날 통금이 임박해서 막차를 타려고 몰려나오는 인파로 가득 찬 명동 입구를 걸어나오며 나는 처음으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아, 이제야 나는 수많은 사람들 가운데서 내 존재감을 느낄 수 있었다. 내가 작가라고? 그러나 삶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고 이제 겨우 어슴푸레한 안개 속에서 사람의 형상을 알아보기 시작했을 뿐인데. 이런 날 곁에 누구라도 있었으면 싶었다. 193
근데 '날 곁에'가 맞는건가? '내 곁에'가 아닌가?
날 곁에? 내 곁에?
헷갈리네.
너무 자주 잊고 산다. 지금 이 순간이 소중하고 감사하다는 사실.목마르고 굶주린 자의 식사처럼 맛있고 매순간이 소중한 그런 삶은 어디에 있는가. 그것은 내가 길에 나설 때마다 늘 묻고 싶었던 질문이었다. 261
makes you think, doesn't it?내 옆칸의 승강구에 매달린 청년이 몸을 앞으로 빼면서 뒤로 점점 멀어지는 여자를 향하여 손을 흔들었다. 여자는 나를 향해서도 손을 흔드는 것처럼 보인다. 저들은 나에게 시선을 던지지도 않았고 지나쳐가는 플랫폼의 외등 불빛이나 바퀴의 소음과 함께 나를 기억조차 하지 않을 것이다. 헤어지며 다음을 약속해도 다시 만났을 때는 각자가 이미 그때의 자기가 아니다. 이제 출발하고 작별하는 자는 누구나 지금까지 왔던 길과는 다른 길을 갈 것이다. 282
하루 안에 사람의 인생이 담겨있다고 누가 그랬더라..도심지의 불빛들이 멀어지면서 어두운 들판이 다가왔다. 베트남으로 떠나는 여정에서 문득 이제야말로 어쩌면 영원히 돌아올 수 없는 출발점에 서 있음을 깨달았다. 그렇다고 불확실한 세계에 대한 두려움도 없었으며 살아 돌아올 수 있을지 없을지 따위의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그렇다, 대위의 말대로 사람은 누구든지 오늘을 사는 거니까. 기차는 요란한 굉음과 함께 어둠 속에서 터널을 통과하는 중이었다. 282
"진정한 내 꿈을 찾는 것"과 "내 마음대로 사는 것"을 혼동하지 말기.
나는 이 소설에서 사춘기 때부터 스물한 살 무렵까지의 길고 긴 방황에 대하여 썼다. ‘너희들 하고 싶은 대로 하라’고 끊임없이 속삭이면서, 다만 자기가 작정해둔 귀한 가치들을 끝까지 놓쳐서는 안 된다는 전제를 잊지 않았다. 그리고 너의 모든 것을 긍정하라고 말해줄 것이다. 물론 삶에는 실망과 환멸이 더 많을 수도 있지만, 하고픈 일을 신나게 해내는 것이야말로 우리가 태어난 이유이기도 하다. 하고 싶지 않은 일을 때려치운다고 해서 너를 비난하는 어른들을 두려워하지 말라는 거다. 그들은 네가 다른 어떤 일을 더 잘하게 될지 아직 모르기 때문이다. 285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서 하기 싫지만 해야만 하는, 내 앞에 주어진 현실을 기꺼이 모두 다 해치우는 자"가 되기.
아자아자, 화잇힝~*
I have a secret. I was watching u firs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