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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상인이 행복의 비밀을 배워오라며 자기 아들을 세상에서 가장 뛰어난 현자에게 보냈다네. 그 젊은이는 사십 일 동안 사막을 걸어 산꼭대기에 있는 아름다운 성에 이르렀지. 그곳 저택에는 젊은이가 찾는 현자가 살고 있었어. 그런데 현자의 저택, 큼직한 거실에서는 아주 정신없는 광경이 벌어지고 있었어. 장사꾼들이 들락거리고, 한쪽 구석에서는 사람들이 왁자지껄 이야기를 나누고, 식탁에는 산해진미가 그득 차려져 있더란 말일세. 감미로운 음악을 연주하는 악단까지 있었지. 현자는 이 사람 저 사람과 이야기를 하고 있었어. 젊은이는 자기 차례가 올 때까지 두 시간을 기다려야 했지. 마침내 젊은이는 자기 차례가 올 때까지 두 시간을 기다려야 했지. 마침내 젊은이의 차례가 되었어. 현자는 젊은이의 말을 주의깊게 들어주긴 했지만, 지금 당장은 행복의 비밀에 대해 설명할 시간이 없다고 했어. 우선 자신의 저택을 구경하고 두 시간 후에 다시 오라고 했지. 그리고는 덧붙였어.
'그런데 그 전에 지켜야 할 일이 있소.'
현자는 이렇게 말하더니 기름 두 방울이 담긴 찻숟가락을 건넸다네.
'이곳에서 걸어다니는 동안 이 찻숟갈의 기름을 한 방울도 흘려서는 안 되오.'
젊은이는 계단을 오르내릴 때도 찻숟가락에서 눈을 뗄 수 없었어. 두 시간 후에 그는 다시 현자 앞으로 돌아왔지.
'자, 어디...'
현자는 젊은이에게 물었다네.
'그대는 내 집 식당에 있는 정교한 페르시아 양탄자를 보았소? 정원사가 십 년 걸려 가꿔놓은 아름다운 정원은? 서재에 꽂혀 있는 양피지로 된 훌륭한 책들도 좀 살펴보았소?'
젊은이는 당황했어. 그는 아무것도 보지 못했노라고 고백했네. 당연한 일이지. 그의 관심은 오로지 기름을 한 방울도 흘리지 않는 것이었으니 말이야.
'그렇다면 다시 가서 내 집의 아름다운 것들을 좀 살펴보고 오시오.'
그리고 현자는 이렇게 덧붙였지.
'살고 있는 집에 대해 모르면서 사람을 신용할 수는 없는 법이라오.'
이제 젊은이는 편안해진 마음으로 찻숟가락을 들고 다시 저택을 구경했지. 이번에는 저택의 천장과 벽에 걸린 모든 예술품들을 자세히 살펴볼 수 있었어. 정원과 주변의 산들, 화려한 꽃들, 저마다 제자리에 꼭 맞게 놓여 있는 예술품들의 고요한 조화까지 모두 볼 수 있었다네. 다시 현자를 찾은 젊은이는 자기가 본 것들을 자세히 설명했지.
'그런데 내가 그대에게 맡긴 기름 두 방울은 어디로 갔소?'
현자가 물었네. 그제서야 숟가락을 살핀 젊은이는 기름이 흘러 없어진 것을 알아차렸다네.
'내가 그대에게 줄 가르침은 이것뿐이오.'
현자 중의 현자는 말했지.
'행복의 비밀은 이 세상 모든 아름다움을 보는 것, 그리고 동시에 숟가락 속에 담긴 기름 두 방울을 잊지 않는 데 있도다.'
그렇다면 도대체 how much was lost in translation?!
아버지는 축복을 빌어주었다. 소년은 아버지의 눈을 보고 알 수 있었다. 그 역시 세상을 떠돌고 싶어한다는 걸. 물과 음식, 그리고 밤마다 몸을 누일 수 있는 안락한 공간 때문에 가슴속에 묻어버려야 했던, 그러나 수십 년 세월에도 한결같이 남아 있는 그 마음을.
지극히 단순한 것이 실은 가장 비범한 것이야.
산티아고는 어디로는 갈 수 있는 바람의 자유가 부러웠다. 그러다 문득 깨달았따. 자신 역시 그렇게 할 수 있으리라는 사실을. 떠나지 못하게 그를 막은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 자신말고는.
행복의 비밀은 이 세상 모든 아름다움을 보는 것, 그리고 동시에 숟가락 속에 담긴 기름 두 방울을 잊지 않는데 있다.
어렸을 때 그는 마을 교회에서 백마를 타고 칼을 뽑아든 성 산티아고 마타모로스 상을 바라보곤 했었다. 말굽 아래 이교도들을 짓밟고 있는 모습이었다. 그가 느낀 것은 불쾌감과 끔찍함뿐이었다. 신실하지 못한자들은 흉측한 것만 좋아하는 모양이었다.
이곳은 더 이상 낯선 곳이 아니었다. 새로운 세계였다.
나 역시 다른 사람들과 똑같아. 어떤 일이 실제로 일어나는 대로 세상을 보는게 아니라 그렇게 되었으면 하고 바라는 대로 세상을 보는거지.
물론 주머니엔 동전 한 푼 없었지만, 그에겐 삶에 대한 믿음이 있었다.
그 상인의 얼굴에는 특별한 미소가 감돌고 있었다. 기쁨으로 충만하고 삶을 향해 활짝 열려 있는 그의 얼굴에는 진지하게 하루 일과를 시작하는 사람의 아름다운 미소가 깃들여 있었다.
세상 사람들이 모두 이해할 수 있는 언어 = 사랑, 열정, 무언가를 바라고 믿는 마음으로 만들어지는 감동의 언어.
# 같은 책이지만 사람들마다 감동의 포인트가 다르다. 분명 같은 부분에서 비슷한 생각을하고 감동을 받는 것도 있지만, 나는 함께 공감하는 부분보다는 다른 점을 발견할 때가 더 흥미롭다.
예를 들어:
'나는 이 대목이 참 좋더라'
'어머, 나도!'
이런 것도 좋지만,
'나는 이 대목이 참 좋더라'
'어? 진짜? 왜? 어째서?'
이럴 때가 더 좋단 말이지. 내가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것들, 그냥 지나칠 뻔 했던 것들을 다시 보게 만드니까.
학교를 그만 두고 자신의 삶을 개척하기 위해서는 학교 안에서 있을 때보다 자기 자신에 철저해야하고, 더욱더 부지런하고 노력해야한다. 목표가 뚜렷해야할 것이며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그걸 이루기 위해서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하는지 명확히 알아야하겠지. 그리고 정말 중요한건 자기가 선택한 것에 대한 책임을 질 줄 아는 것. 그런 각오와 책임감 없이 막연한 일탈을 꿈꾸며 불평 불만을 늘어놓는 사람은 꼴도 보기 싫다. and for whatever reason a person decides to stay in school, he/she should make the best of it. use it to your advantage. just suck it up and stop complaining, nobody forced you to be in school.모든 선택의 책임은 저에게 있습니다. 저는 학교를 그만두겠다고 결심하고는 두려움에 몸이 떨리기도 하지만 미지의 자유에 대하여 벅찬 기대를 갖기도 합니다. 물론 힘들겠지만 스스로 만든 시간을 나누어 쓰면서 창조적인 자신을 형성해나갈 것입니다.
저는 결국 제도와 학교가 공모한 틀에서 빠져나갈 것이며, 세상에 나가서도 옆으로 비켜서서 저의 방식으로 삶을 표현해나갈 것입니다. 90
그 제도를 역이용할 줄 알아야한다고 생각하는 1人.선생님은 네 글이 훌륭하다고 그랬어. 학교에 대한 네 의견에도 동의한대. 그러나 이 편지에 나온 주장은 너희가 이담에 어른이 되어 능력이 생긴 뒤에 학교를 세우거나 교육제도를 바꿔야 가능한 일이랬어. 이탈한 뒤에 개인이 감당하기에는 무척 힘든 노릇이래. 91
우히힉. 유일하게 빵 터져주신 부분.정수는 오페라곡을 음악으로 치지 않았는데 남녀 모두 멱따는 소리라는 것이 그의 결론이었다. 97
멋지구리ㅠ_ㅠ온종일 해변에서
게와 놀다
그리고 간간이 울다오래된 연못에
개구리가 뛰어든다
물소리그러나
감자밭을 적시기엔
아직 적다우리들이 안다고 하는 것들이며 감수성이라고 하는 것들이 얼마나 미흡한지 감자 잎사귀를 적실 정도도 못 되지 않은가. 101
무엇을했고 어디에 있었는지 보다는 누구와 함께였느냐가 항상 더 마음에 남는다.나는 나중에 베트남에 가서 산과 바다의 아름다운 경치가 얼마나 밋밋하고 의미가 없는지 알게 되었다. 어디에서나 기억은 거기 있는 사람과 함께 남는다. 그녀는 배낭을 메고 다시 안개 속으로 사라져버렸다. 175
never ever.그들은 사창가를 가거나 어두운 대폿집을 드나들며 퇴폐의 흉내도 냈지만 어느 길로 가는 것이 지도자가 되는 길인가도 잘 알았다. 절대로 자기 자신을 정말 방기하지는 않았다. 인호나 나처럼 온몸을 던지는 일은 곁에서 지켜보기에는 신나는 모험이었지만 그들 자신은 끝내는 신중한 충고를 하며 한 걸음 비켜섰다.
하지만 그들이 가진 매력 가운데 으뜸인 것은 역시 자기 존재와 생각을 서투르게 드러내지 않는 점이었다. 또한 밖으로 드러낼 때도 일부러 그것을 보편적인 사물에의 비유나 실제적인 것으로 바꾸어 표현했다. 185
self-discipline is the key.
자기 자신에게 엄격할 줄 알아야한다. 역으로 관대할 줄도 알아야겠지.
포인트는 바.란.스.
이힝-그날 통금이 임박해서 막차를 타려고 몰려나오는 인파로 가득 찬 명동 입구를 걸어나오며 나는 처음으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아, 이제야 나는 수많은 사람들 가운데서 내 존재감을 느낄 수 있었다. 내가 작가라고? 그러나 삶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고 이제 겨우 어슴푸레한 안개 속에서 사람의 형상을 알아보기 시작했을 뿐인데. 이런 날 곁에 누구라도 있었으면 싶었다. 193
근데 '날 곁에'가 맞는건가? '내 곁에'가 아닌가?
날 곁에? 내 곁에?
헷갈리네.
너무 자주 잊고 산다. 지금 이 순간이 소중하고 감사하다는 사실.목마르고 굶주린 자의 식사처럼 맛있고 매순간이 소중한 그런 삶은 어디에 있는가. 그것은 내가 길에 나설 때마다 늘 묻고 싶었던 질문이었다. 261
makes you think, doesn't it?내 옆칸의 승강구에 매달린 청년이 몸을 앞으로 빼면서 뒤로 점점 멀어지는 여자를 향하여 손을 흔들었다. 여자는 나를 향해서도 손을 흔드는 것처럼 보인다. 저들은 나에게 시선을 던지지도 않았고 지나쳐가는 플랫폼의 외등 불빛이나 바퀴의 소음과 함께 나를 기억조차 하지 않을 것이다. 헤어지며 다음을 약속해도 다시 만났을 때는 각자가 이미 그때의 자기가 아니다. 이제 출발하고 작별하는 자는 누구나 지금까지 왔던 길과는 다른 길을 갈 것이다. 282
하루 안에 사람의 인생이 담겨있다고 누가 그랬더라..도심지의 불빛들이 멀어지면서 어두운 들판이 다가왔다. 베트남으로 떠나는 여정에서 문득 이제야말로 어쩌면 영원히 돌아올 수 없는 출발점에 서 있음을 깨달았다. 그렇다고 불확실한 세계에 대한 두려움도 없었으며 살아 돌아올 수 있을지 없을지 따위의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그렇다, 대위의 말대로 사람은 누구든지 오늘을 사는 거니까. 기차는 요란한 굉음과 함께 어둠 속에서 터널을 통과하는 중이었다. 282
"진정한 내 꿈을 찾는 것"과 "내 마음대로 사는 것"을 혼동하지 말기.
나는 이 소설에서 사춘기 때부터 스물한 살 무렵까지의 길고 긴 방황에 대하여 썼다. ‘너희들 하고 싶은 대로 하라’고 끊임없이 속삭이면서, 다만 자기가 작정해둔 귀한 가치들을 끝까지 놓쳐서는 안 된다는 전제를 잊지 않았다. 그리고 너의 모든 것을 긍정하라고 말해줄 것이다. 물론 삶에는 실망과 환멸이 더 많을 수도 있지만, 하고픈 일을 신나게 해내는 것이야말로 우리가 태어난 이유이기도 하다. 하고 싶지 않은 일을 때려치운다고 해서 너를 비난하는 어른들을 두려워하지 말라는 거다. 그들은 네가 다른 어떤 일을 더 잘하게 될지 아직 모르기 때문이다. 285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서 하기 싫지만 해야만 하는, 내 앞에 주어진 현실을 기꺼이 모두 다 해치우는 자"가 되기.
아자아자, 화잇힝~*
#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을 때 생기는
주체하지 못할만큼의 슬픔과
가슴 속의 빈자리.
그리고,
살아가는 매 순간마다 느껴지는 그것을 어찌하지 못하는
꼬마.
솔직히 꼬마의 행동이 꽤나 annoying했던 적도 많았는데
다 읽고 나니
아....
이해하겠다.
그 마음 알겠다.
얼마나 아프고 멍들었을까.
그 작고 어린 가슴.
상처가 따끔따끔 쓰라리다 못해 너무 아파 온 몸이 먹먹하지 않았을까....
그런 고통을 이해하고 감당해내기엔 너무 어린 나이니까.
솔직히 나이가 무슨 상관이겠어.
어른인 나도 어찌할줄 몰랐을텐데.
그런 상황이 닥쳐오면,
그런 아픔이 몰려오면,
어떻게 대처해야하는지 아는 사람이 있을까?
아무도 모를껄.
정답은 없으니까..
there is no right way to deal.
of course not.
그래.
그게 그 꼬마의 방식이었던거다.
everyone has their own ways of dealing with grief.
but no body should ever have to deal with such incredibly-hard-almost-impossible-to-deal-with kind of situation.
it breaks my heart.
it really does...
#
살아있는 동안 사랑하고,
사랑하는 동안 표현하라.
매일 매일,
수백번이고,
수천번이고,
늦기전에,
미루지말고,
아낌없이 말하라.
사랑한다고.
사랑한다고.
기회가 다시 오지 않을지 모르니까..
-- 이 책이 나에게 남겨준 메세지.
#
나는
9/11로 인해 친구를 잃었다.
정확히 말하면 9/11 테러때문에 이라크 "전쟁" -- 나는 이것을 절대 전쟁이라고 보지 않지만 그것은 어쨌든 전쟁이라고 불리어지고 있다 -- 이 났고, 군인이었던 내 친구는 그 전쟁에 참가했고 그곳에서 죽었다.
왜?
왜?
왜?
왜 그렇게 죽어야했는지.
생각할 때마다 눈물이 나고 슬프다 못해 화가 치밀어오르는 것을 참을 수가 없다.
나를 더 아프게 했던 것은 친구의 죽음이 실린 인터넷 신문 기사에 달린 악플들.
죽은 사람을 두고 어떻게 그런 말들을 할 수가 있는지 정말 이해할 수 없다.
아프다.
목이 메인다.
#
가기 전에 한 번만이라도 연락이 되었더라면 좋았을껄..
잘 다녀오라는 얘기라도 해줬을텐데..
늦었지만 보고싶다. 그리고 사랑한다 친구야.
이곳은 더이상 낯선 곳이 아니었다.
새로운 세계였다.
떨린다.
막상 던져지면 잘 해냄에도 불구하고 시작 전에는 언제나 이렇게 떨린다.
낯선 곳에 대한 두려움보다는 새로운 세계를 향한 설레임 때문이리라.
또 다시 시작이다.
부딪치자!
즐기자!
그리고,
최선을 다하자-!
그래도 시간을 들여서 되새김질을하는 이유는
읽었던 책의 내용을 다시 한 번 내 마음 속에, 머리 속에 스며들게 하기 위해서.
이렇게 흔적을 남겨두면 시간이 많이 지나더라도 책 내용이랑 책을 읽으면서 생각했던 것들을 기억해 낼 수 있으니까 -- 이 놈의 내 머리속의 지우개는 나날이 성능이 좋아진다말이지-_-;;;
탐정추리 faction은 다빈치 코드로 충분하다. 이런 스타일 별로 좋아하지 않음. ㅎㅎ;;
그래도 사라진 유적/미술품과 그 배후에 관한 이야기는 굉장히 흥미로웠다 -- 실제로 호박방은 WWII이후에 자취를 감추었고 지금까지 행방이 묘연함.
가끔 신문에 도난 당한 작품들에 대한 기사가 나오는데 그런 작품들은 결국 누구 손에 들어가는걸까? 사라진 그림들이 다시 세상의 빛을 볼 날이 올까? 그리고 훔쳐달라고 청탁을 했건 black market에서 사들였건 그렇게 큰 돈을 주고 미술품을 사는 사람들은 누구인지 궁금하다 -- 성 같은 저택 비밀방에 모셔놓고 혼자 보며 흐뭇해할 그들은 욕심쟁이, 우후훗>_<;;;; 도대체 누구네 집 벽에 걸려있거냐구. 근데 솔직히 쫌 부럽다. 보고싶을 때 언제든지 볼 수 있잖아. 미술관까지 안 가도 되고, 사람들에 치이지 않아도 되고.. 울 집에 가져오고 싶은 그림 두 점: Klimt's Adele Bloch-Bauer 그리고 Rachel Ruysch's Flowers in a Glass Vase. 직접 보니까 너무 좋드라.. 매일매일, 하루 죙일 보고싶을만큼..ㅜ_ㅜ
영화에나 있을 법한 이야기는 실제로 벌어진다. 드라마보다 드라마틱한 세상이니깐..
- 그날의 수업은 전체적으로 산만한 분위기였다. 담임은 지나치게 녀석을 의식하고 있음이 분명했다. 수시로 녀석에게 시선을 던지면서 언더스탠을 연발하고 있었다. 그러나 녀석의 표정은 언제나 모른다스탠이었다. 14
- 수업이 모두 끝나자 우리는 초가을 순금빛 햇살을 한 입씩 베어물고 왁자지껄 교문 쪽으로 내달아가고 있었다. 14-15
- 은백양나무는 바람이 불지 않아도 은백색 이파리들을 끊임없이 나부끼면서 햇빛을 털어낸다. 66
- "민주주의 국가에서 개인의 자유와 인권을 이런 식으로 침해하셔도 되는 겁니까."
"거듭 사죄를 드리겠습니다. 하지만 우리 나라는 아직까지 민주주의를 표방하는 수준에 머물러 있는 실정이지 민주주의를 실천하는 수준에 도달해 있는 실정은 아니라고 봅니다..."
조선생은 갈피를 잡을 수가 없었다. 여자가 유연한 화법을 구사하면 안도감에 사로잡히고 여자가 강경한 화법을 구사하면 불안감에 사로잡히는 심경의 변화만 거듭되고 있었다. 33 - 한국은 정치적으로나 사회적으로 많은 변화를 보이고 있었다. 적어도 표면적으로는 독재정치가 종식되고 민주정치가 태동하는 분위기였다. 거리에는 생동감이 넘치고 있었다. 하지만 구시대의 악습들은 아직 그대로 남아 있었다. 탐관오리들도 그대로 남아 있었고 부정부패들도 그대로 남아 있었다. 85
- 오래 전부터 대학가에는 정치음모설이 나돌고 있었다. 지배계급이 일반대중을 섹스와 스포츠와 스크린에 중독시켜 정치적 사회적 불감증에 걸리도록 유도하고 있다는 주장이었다. 정부는 비록 가난하게 살더라도 인간답게 살고 싶어하는 사람들의 소망을 외면해 버리고 짐승처럼 살더라도 인간답게 살고 싶어하는 사람들의 욕망을 감싸안았다...그러나 다행스럽게도 한국경제는 국제적인 상승기류를 타고 한동안 눈부신 발전을 거듭했다. 눈부신 발전을 거듭하면서 도덕불감증과 양심불감증이 풍토병으로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200
- 당시에도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라고 헌법 제 1조에 명기되어 있었다. 그러나 민주공화국에는 민주주의가 없었다. 295
민주주의 민주주의 외치지만 냉정하게 말해서 우리나라는 아직이다 -- 2학년 때까지만해도 politics major이었던 나는 에쎄이 때문에 교수님과 종종 이야기를 나누곤 했다. 어느 날은 이야기가 한국 정치 시스템과 재벌그룹쪽으로 흘렀는데 그 때 교수님이 한국은 democratic country가 아니라고 말해서 내가 (겉으론 표현하지 않았지만;;) 무지 기분이 나빴던적이 있다. 그러나 지금은 그 분이 어떤 의미에서 그런 얘기를 했는지 이해한다.
문민정부 시작한지 이제 겨우 15년. 사춘기 소년이고 갈 길이 멀다.
대한민국은 지금 성장통--표면적으로만이 아니라 진정한 민주주의 국가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꼭 필요한--을 겪고 있다.
- 하지만 한쪽 눈으로 바라보아도 저물녘 돌담길로 숨어드는 굴뚝새는 검은색이고 한쪽 눈으로 바라보아도 한밤중 논둑길에 피어 있는 달맞이꽃은 노란색이다. 한쪽 눈으로 바라보아도 소나무에는 소가 열리지 않고 한쪽 눈으로 바라보아도 개머리에는 개뿔이 돋지 않는다. 육안으로 포착할 수 있는 것들이 모두 진체(眞體)가 아니거늘 한쪽 눈으로 본다고 무엇이 달라지며 양쪽 눈으로 본다고 무엇이 달라지겠는가. 53
하지만 우리는 항상 일부분만을 보고 '다 보았다'라고 말하지 않는가?
- 특히 이모는 한국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다시 미국에 있는 대학에 편입해서 석사학위까지 받은 경력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이모는 미국이라는 나라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철면피한 배금주의. 습관화된 인종차별. 가당찮은 우월의식. 무분별한 개방정책. 이모는 그것들을 싸잡아 망치근성이라고 불렀다. 약소민족들은 망치와 손을 잡으면 번영과 우호가 보장되는 줄로 알고 있지만 망치와 손을 잡은 약소민족들치고 미풍양속과 전통문화가 박살나지 않은 나라가 없다는 것이었다. 한국이 그 대표적인 희생양이라는 것이었다. 이모는 미국을 한자어로 표기할 때 반드시 미혹할 미(迷)자를 써서 미국(迷國)이라고 표기했다. 미국은 아름다울 미(美) 자를 갖다붙이기에 과분한 나라라는 것이었다. 54
- 인간은 의식주에 관계된 모든 물건들을 자연에서 훔쳐다 쓰고 있었다. 어떤 물건이든지 인간이 절대적 소유권을 주장하는 것은 타당치 않다는 생각이었다. 59
- 자신의 안위를 위해서라면 종족의 목숨을 초개처럼 수장시키면서 살아온 인간이 종족의 안위를 위해서라면 자신의 목숨을 초개처럼 수장시키면서 살아온 레밍을 과연 자신들보다 하등한 동물로 평가 할 수 있을까. 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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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을 통해서든 종교를 통해서든 만물을 사랑하는 마음만 간직할 수 있다면 인생은 그 한 가지만으로도 살아갈 가치가 있습지요." 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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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덥던 지난 여름 바깥에서 그토록 시끄럽게 울어대던 매미들은 모두 어디로 갔을까. 도시에서 울어대는 매미들은 시골에서 울어대는 매미들보다 몇 배나 성량이 높다는 전문가들의 연구발표가 있었다. 도시의 소음에 자신들의 존재를 알리는 소리가 파묻히지 않도록 발악적으로 성량을 높이고 있다는 설명이었다. 인간이 영악해지면 자연도 그만큼 영악해진다. 근년에는 겨울에도 죽지 않고 아파트에서 인간들고 동거를 하는 모기들까지 생겼다. 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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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들은 기본적으로 예지력이나 투시력이나 텔레파시를 이용하는 방법을 알고 있었다. 과학이 모든 분야를 진보시키지는 않는다. 때로눈 어떤 분야를 퇴보시키는 역할도 담당한다. 160
- 인간은 다른 생명체들을 잡아먹어야만 생존이 유지되는 악역을 담당한 채 이백만 년 동안이나 지구라는 무대를 장악하고 있다. 인간은 물질적인 면에서는 끊임없이 진화를 계속하고 있지만 정신적인 면에서는 끊임없이 퇴화를 계속하고 있다. 195
- 아무리 비천한 미물이라도 애정 어린 눈길로 바라보면 인간과 동일한 존재적 가치를 지니고 있음을 깨닫게 된다...293
인간의 오만방자함이 밑도 끝도 없구나.
수직관계가 아니라 수평의 관계인데 인간은 세상의 모든 만물 위에 군림하고 있는양 행동하고 있다...
(제발 한반도 대운하 절대 안돼. 내가 보기에는 대운하가 소고기보다 더 심각하다...)
- 당시 대통령은 어깨에 별을 몇 개씩 붙이고 장병들을 통솔하던 군인 출신으로 학생운동에 대해서는 시종일관 강경책을 고수하고 있었다. 대통령은 자신이 국가와 민족을 패망의 위기 속에서 구출했다는 착각 속에 빠져 있었다. 그러나 우리가 보기에는 그가 국가와 미족을 패망의 위기 속에 빠뜨리고 있었다. 64
착각도 유분수,
- "무슨 일로 그토록 언성을 높이십니까."
"음식에 바퀴벌레가 빠져 있잖소."
"사람을 잡아먹는 악어나 상어가 빠져 있는 것도 아닌데 손님은 놀라움이 너무 지나치신 거 같습니다."
"당신 지금 열받은 손님하고 농담 따먹기 하자는 거요."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단지 지구상에는 인간만 살고 있지 않으니까 때로는 음식에 바퀴벌레가 빠질 수도 있다는 얘깁니다. 대단치도 않은 일에 손님께서 너무 언성을 높이시니까 드리는 말씀이지요."
"음식에 바퀴벌레가 빠져 있는데 대단치도 않은 일이라니 당신 도대체 여기가 어느 나라인 줄 알고 음식점을 차렸소."
"저는 청각신경이 예민해서 조용히 말씀하셔도 잘 알아듣습니다. 손님께서는 텔레비전도 안 보십니까. 요즘은 선진대국에도 다양한 곤충들을 영양식으로 개발해서 호황을 누리는 음식점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소문입니다."
"이거 살다보니 별놈의 음식점을 다 구경하겠군."
"손님께서는 잘 모르시는군요. 비행시에나 보행시에 음식그릇에 추락하거나 실족하지 않도록 곤충들을 철저하게 교육시킬 수 있는 음식점이 아직 대한민국에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드시기 싫으면 그냥 가시면 되지 언성은 왜 높이시냔 말입니다. 누가 억지로 드시라고 강요했습니까."
"최소한 정중하게 사과라도 하셔야 되는 거 아닙니까."
"다른 손님들을 모조리 쫓아버리셨는데 주인으로서 사과할 기분이 나겠습니까." 313-314
주객전도도 유분수.
- 고등학교 때는 입시문제로 자주 채택되는 시로만 인식되던 진달래가 그날은 비로소 민박집 양지바른 뒷산에 피어 있는 꽃으로 인식되고 있었다. 76
- "쓰퍼, 쪽팔리는 거 겁나서 출세의 지름길을 포기하냐. 솔직히 요즘 대학이 어디 학문탐구를 위한 대학이냐 생계탐구를 위한 대학이지." 176
- "저 자식은 전교생의 구토촉진을 위해서 날마다 자가용을 몰고 다니는 걸 거야." 78
- 교장선생님의 별명은 파스였다. 신경통이나 타박상에 붙이는 파스가 아니었다. 파리가 스키를 탄다는 말을 줄여서 만들어낸 파스였다. 교장선생님은 대머리였다. 271
우히힉>_<
- "그래 싼똥아. 천도리 촌구석에서 인물났다.. 하지만 지금은 짱깨들 글자를 많이 아는 사람이 출세하는 시대가 아니라 양놈들 글자를 많이 아는 사람이 출세하는 시대야." 274
- 천도리 촌구석은 급우들 모두의 열등요소로 자리잡고 있었다. 급우들은 지독한 도시병에 걸려 있었다. 천도리 촌구석에서 태어나 천도리 촌구석에서 살다가 천도리 촌구석에서 죽겠다는 녀석은 아무도 없었다. 대한민국은 도시공화국이었다. 도시를 위해서 치안이 존재하고 도시를 위해서 법률이 존재하는 나라였다. 도시를 위해서 노동이 존재하고 도시를 위해서 의무가 존재하는 나라였다. 도시는 황홀지경이었고 지상천국이었다. 274
- 오로지 도시에 대한 환상만이 급우들의 의식을 사로잡고 있었다. 275
- 도시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인간에게 생존을 의지하고 시골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자연에게 생존을 의지한다. 송을태의 눈에는 도시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생존이 시골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생존보다 몇 배나 위태롭고 허술해 보인다. 317
참 신기해.
어느 나라에 가던지 '도시'는 한결같이 바쁘고, 사람도 많고, 뭐랄까 그냥 모두 다 분위기가 회색빛으로 비슷비슷한 것 같아 -- 역으로 시골도 어느 나라던 푸른 초록 빛 분위기가 비슷비슷하다고 말할 수 있겠구나. 삶의 속도는 도시에 비해 느리고 여유롭고... 도시는 도시대로의 매력이 있고, 시골은 시골만의 매력이 분명히 있는데, 왠지 도시의 세련됨에 시골의 수더분한 기가 팍 죽어버린 것 같지 않아? 사람들도 모두 도시만 동경하는 것 같고.. 아무리 앞만보고 뛰어가는 바쁜 도시 속 생활이라도 가끔은 멈춰서 숨을 돌리고 주변을 둘러볼 수 있는 여유를 가졌으면 좋겠어.
- "나는 명품을 타고 다니는 사람들은 별로 존경스럽지 않아." 15
- 세인들의 머리 속에는 망각이라는 이름의 벌레들이 살고 있다. 망각이라는 이름의 벌레들은 기억을 파먹고 살아간다. 89
- ...그러나 대다수의 사람들은 자신이 눈으로 직접 목격하지 않으면 올챙이가 커서 개구리가 된다는 사실조차도 믿으려 들지 않는다. 남들이 한결같이 그렇게 말하기 때문에 수긍은 하더라도 내심으로는 좀처럼 의심을 떨쳐버리지 못하는 것이다. 162
- 미평시의 젊은이들만 하더라도 개천절보다 발렌타인데이에 더 지대한 관심을 보이고 있었으며 광복절보다 화이트데이에 더 지대한 관심을 보이고 있었다. 대도시들은 두말 할 나위가 없없다. 발렌타인데이나 화이트데이가 임박해 오면 유명 백화점이나 제과회사들은 각종 이벤트로 젊은이들을 현혹하기에 여념이 없었다. 254
- "어떤 일이든지 땀 흘리지 않고 성적이 오르기를 바란다면 그놈은 프로가 아닙니다. 남들하고 똑같은 차림새에 남들하고 똑같은 생각으로 살아가면 프로세계에서는 절대로 살아남을 수가 없어요." 321
- "...인격적인 완성도를 따진다면 아무리 두뇌 속에 많은 지식을 소장하고 있는 학자라도 가슴 속에 한가지 깨달음을 소장하고 있는 범부를 따를 수가 없겠지요...한마디로 말씀드리자면 많이 아는 놈 백 명보다 많이 깨달은 놈 한 명이 세상을 더 평화롭게 만든다는 겁니다." 19
- 처음부터 끝까지 갱들이 개석을 향해 총구를 들이대고 최신형 기관단총을 난사하는 영화였다. 아무런 감동도 느낄 수가 없었다. 인명은 재천이 아니라 재총이라는 생각으로 만들어진 영화 같았다...감동이 없는 영화는 기억 속에 오래 머무르지 않는다. 이필우가 차를 몰고 시내를 몇 바퀴 도는 동안에 영화는 저절로 기억 속에서 전명 삭제 되었다. 30
제아무리 볼거리가 슈퍼스펙터클킹왕짱인 영화라해도 '이야기'가 없으면 말짱 꽝이더라.
- 어떤 채널에서는 저명인사들의 대담을 내보내고 있었고 어떤 채널에서는 인기가수들의 노래를 내보내고 있었다. 저명인사들은 진지한 표정으로 사회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었으나 정작 자신들의 문제점은 모르고 있었으며 인기가수들은 열정적인 동작으로 무대를 누비고 있었으나 시종일관 립싱크로 대중들을 기만하고 있었다. 33
"자신의 생각에 아무리 확고한 믿음과 자신이 있다고 해도 시청자들을 굽어보며 가르치려는 듯한 태도는 심히 곤란하다. 그것은 기본적으로 시청자들의 수준을 무시하는 모습이기 때문이다. 최근 나라가 어지러운 상황에 놓인 것도 일부 정치인들이 자꾸만 국민들을 계몽하겠다며 어줍지않은 태도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이은미가 속한 대중문화란 말 그대로 대중이 만들어가는 문화이다. 따라서 대중문화를 발전 시키고 싶다면 대중들과 우선 소통하고 함께 어울리며 나아가야지 일방적으로 이끌려하는 것은 곤란하다. 대중은 계몽의 대상이 아니라 소통의 대상이기 때문이다."
by 웅크린 감자.
- "외부적인 조건으로 맺어진 사람들은 평생타인으로 살아가는 경우가 많고 내면적인 조건으로 맺어진 사람들은 천생연분으로 살아가는 경우가 많지요." 59
- 하객들은 그리 많지 않았다. 그러나 형식적으로 참석한 사람은 거의 없었고 모두가 진심으로 축하해 주기 위해서 참석한 사람들뿐이었다. 76
- 나연이는 시험으로 인간의 우열을 측정하는 방식이 빨리 종식되어야한다는 견해를 가지고 있었다. 시험은 지극히 부분적이고 일시적인 능력밖에는 측정할 수 없기 때문에 학생들의 미래에 대한 잠재적 능력을 너무 일찍 말살시켜 버린다는 주장이었다. 89
하지만 시험이 끝나고 나면 머리속에 남는 것은 하나도 없다는거 -- 내 머리 속의 지우개..? ㅋㅋㅋ
- 언제나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면서 급우들을 대했다. 그러나 절대로 오만하거나 냉정한 성격은 아니었다. 다만 함부로 대할 수 없는 차분함과 고아함이 언제나 나연이의 주위를 감싸고 있었다. 91
- 누구나 아플 때는 외로움을 느낀다. 누구나 외로움을 느낄 때는 기다림을 배운다. 그리고 누구나 기다림을 배울 때는 마음의 문을 열어둔다. 141
- 대한민국에서는 아무리 재능이 범털이라도 가방끈이 짧으면 개털 취급을 받는다. 저 복면 쓴 놈의 학력이 중졸만 아니었어도 벌써 오래 전에 댄스계의 황제로 대접받았을 거다. 하지만 대한민국의 꼴통들은 가방끈이 아무리 짧아도 진흙 속에 피는 연꽃이 얼마나 눈부신가를 숙고하지 않는다. 219
- "저도 젊었을 때는 종교를 나약한 사람들의 도피처 정도로만 생각했었지요. 나이가 들어가면서 모든 인간들이 거대한 운명의 그물에 갇혀 있는 척추동물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깨닫기 시작했지요." 226
- 세인들은 지피지기(知彼知己)면 백전백승(百戰百勝)이라는 말을 자주 써먹는다. 손자(孫子)의 모공편(謨攻篇)에 나오는 말이다. 그러나 모공편에는 지피지기면 백전불태(百戰不殆)라고 명기되어 있다. 상대를 알고 나를 알면 백 번을 싸워도 위태롭지 않다는 말이다. 손자는 결코 백전백승을 최선책으로 삼지는 않았다. 백전백승은 싸움이 불가피할 때 결과적으로 얻어지는 차선책이다. 싸움에는 언제나 위태로움이 따른다. 그래서 손자는 싸우지 않고 적을 굴복시키는 계략을 최선책으로 삼았다. 228-229
- "예술이 밥 먹여줍니까."
얼마나 몰지각한 질문인가. 그러나 현실은 이따금 거만한 표정으로 예술가들에게 몰지각한 질문을 던지는 소치를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물론 인간은 살아가기 위해 반드시 밥이 필요한 동물이다. 그러나 인간은 결코 밥을 먹기 위해 살아가는 동물이 아니다. 인간은 육체적인 동물이면서도 정신적인 동물이다. 육체적인 양식을 필요로 할 때도 있지만 정신적인 양식을 필요로 할 때도 있다. 어느 한쪽이라도 공급을 끊어버리면 인간은 죽음에 이르게 된다. 예술은 분명히 정신적인 양식이다.
밥을 먹지 않으면 육신이 죽어버리지만 예술을 먹지 않으면 영혼이 죽어버린다. 하지만 무지몽매한 현실은 영혼을 중시하지 않는다. 231
밥과 예술, 육체와 정신 사이에서 중심을 잃지 않고 영혼과 육신 모두 건강한 인생을 살아야지.
- 요즘은 모차르트가 다방면에서 돈벌이로 이용되고 있었따. 모차르트 음악을 간질치료에 이용해서 돈을 버는 의사도 있었고 모차르트 음악을 태아교육에 이용해서 돈을 버는 단체도 있었다. 모차르트라는 간판을 내걸고 학습지를 팔아먹는 회사도 있었고 모차르트라는 상표를 내걸고 오락기를 팔아먹는 회사도 있었다. 그러나 정작 모차르트가 한국에서 살았따면 울화통이 터지거나 굶주림에 찌들어서 틀림없이 십 년 정도는 더 앞당겨 요절해 버리고 말았을 것이다. 235
- ...자신의 인생을 스스로 창조하면서 살아가는 방법...236
- 육안으로 사는 이들은 육체를 가치 있게 생각하고 뇌안으로 사는 이들은 지식을 가치 있게 생각한다. 심안으로 사는 이들은 사랑을 가치 있게 생각하고 영안으로 사는 이들은 만물을 가치 있게 생각한다. 248
- "본디 세상에는 범죄가 없는 법입니다. 단지 자기 생각대로만 세상을 살아가는 인간이 있을 뿐이지요. 전세계 범죄자들의 공통점이 하나 있습니다. 여러분은 그것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그것은 모든 범죄자들이 당하는 사람의 입장을 절대로 고려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바로 그 공통점만 사라져버린다면 저절로 범죄도 사라져버립니다. 달리 말하면 각자가 남을 배려하는 마음을 간직하고 세상을 살아간다면 저절로 범죄도 사라져버립니다. 남을 배려하지 않고 살아가는 마음이 곧 범죄를 끌어안고 살아가는 마음입니다." 290
'내가 당하고 싶지 않은 일을 남에게 행하지 말라'는 뜻이된다.
이것을 항상 마음에 새겨두고 살아간다면 서로 상처주고 아프게하는 일은 절대 없을텐데..
- 그동안 인고의 나날을 보내면서 깎았던 천 명의 부처님은 단지 마지막 한 명의 처사입상을 완성시키기 위한 인연의 징검다리였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2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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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했어요. 팔십년대초에 한국에 있을 때 나는 생각했지요. 독재자 니들이 아무리 나를 제약해도 빼앗아갈 수 없는 것도 있다고 말예요. 예를 들면 우리 머릿속에 떠오르는 생각들이나 상상력 같은 것들, 꿈들... 한데, 아니었어요. 미국에 간 지 육개월쯤 지나고 나서 나는 내가 한국에 있을 때와는 전혀 다른 상상을, 생각을 그리고 꿈을 꾸고 있다는 걸 깨닫게 됐지요. 그건 무서운 발견이었어요. 혹시 이해할 수 있으세요?
나는 이해한다.
적어도 이해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내가 계속 한국에만 있었다면, 한 곳에만 있었다면, 지금 꾸는 꿈들을 나는 꿀 수 있었을까? probably not.
그래서 난 감사하다. 내가 조금이라도 더 넓은 세상을 보고, 더 다양한 것들을 경험하고, 더 다른(?) 꿈들을 꿀 수 있어서.
여기까지 왔는데 why think small? why aim low? 더더욱 높은 곳을 바라보고 더 큰 꿈을 꿔야지!
aim at arrogance and land on confide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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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마, 너 시궁창에 빠져본 일 있냐? 난 있다. 물이 생각보다 뜨듯하데. 그 기분 너는 모를 거다. 더는 더러워질 수 없는 느낌, 더는 모욕당할 수 없는 평화... 그건 좋은 거야. 그리고 거기서부터 정말 우리는 시작하는 거야.
작가는 생각한다,
정녕 이런 시궁창 같은 고통이 있고 난 후에라야 우리는 시작할 수 있는 것인가.....하고.
똑같이 성공한 두 인생이 있다.
한 쪽은 온갖 turmoil을 이겨내고 성공한 삶,
다른 쪽은 그런 대단한 풍파 없이 성공한 삶.
which one do i prefer?
cruisin' would be nice. but it wouldn't be as adventurous, right? :)
그래.
상처는 언젠가는 다 아물게 되어있어.
흉터쯤이야 뭐. 새 살이 돋은거잖아. it's alright.
Milan Kundera's
The Unbearable Lightness of Being (1984)
What a title!